2021년 8월 29일 일요일

현존하는 고대7대 불가사의 대 피라미드

대 피라미드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가장 오래되었고,유일하게 그 실체가 남아 있는 인류의 유산이다. 또한, 고대 이집트 문명을 대표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카이로 인근의 가자 고원의 사막위에 거의 4,500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아직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왜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이었고,많은 고대 이집트 유물 중에서도 아이콘이 되었을까?

압도하는 그 크기다.기원전 2,580-2,560년 경(고 왕국 제4왕조 kUFU파라오) 약 20여년에 걸쳐 높이 약146M(현재 상부가 무너져 139M)밑변 243M의 피라미드로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다.14세기 초 까지, 거의 4,000년 동안 인류가 만든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크기를 나타내는 숫자보다,실제 앞에 서면 그 크기에 압도당한다.파란 하늘을 향해 뻗쳐있는 돌의 능선이 하늘에 닿을 것 같다.이 거대한 건축물은 평균 2.5톤이나 되는 230만개의 돌로 만들어졌다.대 부분이 석회암이고,내부 현실과 일부 기초재로는 화강암이 사용되었다.외곽은 사방 1M가 넘는 석회암을 쌓아 올린 형태로 남아있지만, 옆 다른 피라미드나 옛 기록에 따르면 연마한 하얀 고급 석회암으로 마무리하여,태양 아래 번쩍번쩍한 아름답고 경이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멋지게 외관을 장식했던 연마된 하얀 석회암 석재들은 후대에 고급 건축재로 다 뜯겨져 나가 단차가 져 있는 현재의 모습이다.특히 무너져 내려 사다리꼴로 변형된 피라미드의 꼭지 부분은 (CAP) 아마도 금으로 장식되었을 것이라 많은 학자들은 믿고 있다.외장재도 뜯겨 나갔으니, 금 이라면 얼마 못가 바로 사라졌을 것이다.상상해 보자.사막위에 강렬한 태양 아래 금으로 된 모자를 쓴 하얗게 번쩍이는 거대한 인공의 산을 ....
위대한 파라오이자 신의 사후 거처를 사람들은 경외감으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황량한 사막에서 그 많은 돌들은 어디서 어떻게 구했을까?

가장 많이 사용된 주 석재는 석회암이다. 대략 550만톤에 이른다.기자 일대는 나일강에서 멀지 않은 대략 해발 100M의 고원 지대이다.백악기 말에서 신생대 초기 까지 아프리카와 유럽을 가르는 테티스(Tethys)해의 얕은 바다였다.그 기간 동안 유공충의 사체 등이 퇴적되어 석회암 퇴적층을 이루게 되었다.이후 신생대 에오세 때 바다가 물러나고 오늘의 기자 고원이 되었다.상대적으로 단단한 석회암이 이 지대의 기반암이다.이 피라미드 바로 옆의 스핑크스는 바로 이 석회암 기반암을 통째로 조각한 것이다.석회암은 주로 조개류나 유공충등의 사체가 바다 밑에 쌓여 생성된 암석이다.퇴적암이라 결이 있어 뜯어내기도 쉽다.비교적 부드럽고 무게도 가벼워 다루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인근에 위치한 채석장에서 가져온 이 돌은 피라미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부 적층용으로 사용되었다.강 건너편 채석장에서 가져온 하얀 고급 석회암은 표면을 연마해서 피라미드를 미려하게 장식(casing stone)하는데 사용되었다.왕의 현실 등 화려하게 장식하는 곳과 도굴꾼을 막기 위해 입구 봉인용으로는 단단한 화강암이 사용되었다.화강암은 지하 마그마가 굳어져 생성된 화성암이다.여러가지 광물들이 섞여 있어 색감은 화려하지만, 단단하고 비교적 무거워 다루기가 어려운 암석이다. 무게 25톤에서 80톤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로 약 8,000톤이 사용되었다.800km떨어진 아스완의 화강암 채석장에서 나일 강을 통해 운반해 왓다.이 화강암의 지질역사는 약 6억년전의 원생대에 생성된 것이다.또한 이런 석재들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모르타르도 80만 톤이나 사용되었다.

현대에도 다루기 어려운 무거운 석재는 어떻게 운반했을까?

이집트인들은 그 시대에도 바퀴라는 기술을 알고 이용해 왔다.그러나 그들은 바퀴 대신에
나무판 등을 이용하여 미끄럼 이동 방법을 택하였다.미끄럼 끌기 방법은 모래에 푹푹 빠지는 바퀴보다 훨씬 효과적이다.물을 뿌려 모래를 젖게하여 마찰력을 줄였다.그리고 완전 증명된 것은 아니나,경사로(ramp)를 이용해서 순차적으로 위로 쌓아 올렸다.강 건너편의 외관 장식용 고급 석회암과,아스완에서 채석한 화강암은 나일 강을 통해 날랐고, 이 공사 현장까지 이동시키기 위해 운하까지 있었다고 한다(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왜 황량한 사막위에 위대한 건축물을 세웠을까?

필요한 자재도 운반하기 어렵고 인력도 동원하기 쉽지 않고, 따가운 햇살이 어려운 노역을 더 힘들게 하였을 사막이었을까 하는 의문이다.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나일강은 매년 범람한다.나일강을 중심으로 인근 대략 10km정도가 그 영향을 받게 된다.기자 고원 지구는 이 위험 범위에서 벗어나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이다.현재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불과 수십km 떨어진 가까운 곳이다.그리고 그 공사에 필요한 석재들을 구할 수 있는 채석장이 있고 나일 강도 그 다지 멀지 않아 물류면에서도 유리한 곳이다.또한 고원 지대라 멀리서도 위대한 건축물인 피라미드는 쉽게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오늘 날 까지 거의 4,500년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것은 건축 기술도 있겠지만, 건조한 사막이 크게 한 몫 하였다. 주 구성재인 석회암은 습한 기후 환경에는 아주 취약하다. 또 사막 모래 폭풍은 이런 건축물을 뒤덮어 더 안전하게 오래오래 견딜 수 있게 보호막 역할을 하였다.

또 다른 불가사의,정교하다.

다루기 힘든 석재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축물이 믿지 못할 정돌로 정교하다.한변이 243m에 이르는 4개 밑변의 오차는 불과 58mm에 불과하다.피라미드 내부,왕의 현실(석관이 안치된 방) 천장에는  돌덩이들이 짓누르는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는데,그 압력을 어떻게 분산시킬 수 있었는지? 이 또한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어려운 과제인데 , 현실 지붕위에 독특하게 돌을 쌓아 올려 압력을 분산시켰다. 그 당시 수학 계산이 얼마나 정밀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피라미드는 정확하게 정사각형의 중심에 일치하는 꼭지점에 동일하게 사면이 연결되어있다. 기하학적인 면에서도 놀라운 것이지만, 다루기 힘든 석재로 매끈하게 오차없이 축조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욱 신기하다. 이것은 그 이전에 시도된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이루어진 기술의 발전에 힘 입었다. 근처 사카라(고왕국의 수도 멤피스)에 현존하는 계단식 피라미드(고왕국 제1왕조 BC3,100)가 증명하고 있다.최초에 사각형 지붕을 가진 지하 무덤(mastaba)에서 그 다움 무너지고 굽어지는 시행 착오를 거쳐 사각형 계단식 이후 정교하고 경이로운 건축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왕의 현실은 텅 빈 공간이다. 도굴이야 수 없이 이루어져  왔겠지만,그 흔적은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상식이다.위험을 무릅쓴 도굴은 인력동원이나 시간 제약 상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후기 술탄들이 주도한 공공연한 보물 탐사에서도 그 곳은 아무 것도 없는 그 저 텅 빈 공간이었을 뿐이다.왕의 현실 한쪽에 빈 석관만 남아 있었을 뿐이다. 술탄이 보물을 빼 돌리고 다른 이야기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도 많았지만, 정황 상 사실일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론상  37,000개 이상의 방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부 어딘가 보물이 숨겨진 비밀의 공간이 있을 것이란 추정으로 아직도 첨단 장비를 활용하여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내부에 들어가도 별 것 없읍니다'하는 안내인의 멘트에도, 필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도굴꾼들이 이용한 입구를 통해 긴장한 채 쪼그려 자세로 몸을 낮추어 피라미드 내부를 탐험하였다. 오르막의 낮은 통로를 거쳐.대 화랑과 화강암으로 꾸며진 덩 그란 현실까지 들어갔다. 무엇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입구에서 휴대폰을 포함 모든 촬영기기는 맡겨 둬, 내부 촬영을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신비한 피라미드의 내부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피라미드는 어떤 용도였고 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피라미등의 어원은 통밀핫케이크라는 이집트어 pyamids가 고대 그리스어 pyramid가 되었다.정사면체의 바닥에서 경사면이 중앙의 한 꼭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입체형을 말한다. 이집트 이외에도 피라미드는 많이 존재한다. 이집트 기자의 대 피라미드의 사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르키고 있다. 동과서는 태양이 뜨고 지는 방향이다. 태양이 뜬다는 것은 탄생을 의미하고 서쪽으로 태양이 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세계를 굳게 믿었다.죽은 시체를 재탄생에 대비해 미이라로 처리하고 사후 세계 생활에 필요한 가구나,음식 등 모든 필요한 물품들을 함께 준비해 주었다. 남과북은 이집틍의 생명줄인 나일 강의 흐름과 평행하다.나일 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수직으로 꼭지점에 이르는 축은 땅과 하늘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축이다. 파라오는 절대권력의 왕이자 살아있는 신이다. 신의 사후 거처가 하늘 가까이 오르게 하는 의미다.피라미드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신비한 효과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을까?

종전에는 그 규모로 보아, 수십만의 노예가 20년에 걸쳐 동원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최근에 파피루스 기록물이 발견되어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숙련공을 포함하여, 많게는 수 만 명의 자유인이 급여를 받고.하루에 일정한 휴식시간을 가지며 이 노역을 했다는 것이다. 인근에 이들이 임시로 거주했던 주거지도 마련되었다. 병이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때에는 타인으로 교대도 가능했다고 하니 비교적 자유로운 노역 조건이라 할 수 있다.

피라미드는 현대판 뉴딜(new deal)정책의 거대한 일자리

고대 이집트의 계절은 3계로 구분된다.

나일강이 범람하는 범람기와 파종기와 수확기이다. 파종기와 수확기는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고 일손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러나 범람기는 비교적 한가한 시기이다.거대한 피라미드는 파라오에게는 사후 영원한 안식처이자, 파라오의 권위를 나타내는 장엄하고 경외로움을 나타내는 건축물이다.이 거대한 건축 공사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현대에서의 뉴딜 정책과 유사하다.거대한 공사를 통해 농한기에 유휴 인력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먹을 거리를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거대 프로젝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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