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9일 일요일

현존하는 고대7대 불가사의 대 피라미드

대 피라미드는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가장 오래되었고,유일하게 그 실체가 남아 있는 인류의 유산이다. 또한, 고대 이집트 문명을 대표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카이로 인근의 가자 고원의 사막위에 거의 4,500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아직도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






왜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이었고,많은 고대 이집트 유물 중에서도 아이콘이 되었을까?

압도하는 그 크기다.기원전 2,580-2,560년 경(고 왕국 제4왕조 kUFU파라오) 약 20여년에 걸쳐 높이 약146M(현재 상부가 무너져 139M)밑변 243M의 피라미드로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다.14세기 초 까지, 거의 4,000년 동안 인류가 만든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크기를 나타내는 숫자보다,실제 앞에 서면 그 크기에 압도당한다.파란 하늘을 향해 뻗쳐있는 돌의 능선이 하늘에 닿을 것 같다.이 거대한 건축물은 평균 2.5톤이나 되는 230만개의 돌로 만들어졌다.대 부분이 석회암이고,내부 현실과 일부 기초재로는 화강암이 사용되었다.외곽은 사방 1M가 넘는 석회암을 쌓아 올린 형태로 남아있지만, 옆 다른 피라미드나 옛 기록에 따르면 연마한 하얀 고급 석회암으로 마무리하여,태양 아래 번쩍번쩍한 아름답고 경이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멋지게 외관을 장식했던 연마된 하얀 석회암 석재들은 후대에 고급 건축재로 다 뜯겨져 나가 단차가 져 있는 현재의 모습이다.특히 무너져 내려 사다리꼴로 변형된 피라미드의 꼭지 부분은 (CAP) 아마도 금으로 장식되었을 것이라 많은 학자들은 믿고 있다.외장재도 뜯겨 나갔으니, 금 이라면 얼마 못가 바로 사라졌을 것이다.상상해 보자.사막위에 강렬한 태양 아래 금으로 된 모자를 쓴 하얗게 번쩍이는 거대한 인공의 산을 ....
위대한 파라오이자 신의 사후 거처를 사람들은 경외감으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황량한 사막에서 그 많은 돌들은 어디서 어떻게 구했을까?

가장 많이 사용된 주 석재는 석회암이다. 대략 550만톤에 이른다.기자 일대는 나일강에서 멀지 않은 대략 해발 100M의 고원 지대이다.백악기 말에서 신생대 초기 까지 아프리카와 유럽을 가르는 테티스(Tethys)해의 얕은 바다였다.그 기간 동안 유공충의 사체 등이 퇴적되어 석회암 퇴적층을 이루게 되었다.이후 신생대 에오세 때 바다가 물러나고 오늘의 기자 고원이 되었다.상대적으로 단단한 석회암이 이 지대의 기반암이다.이 피라미드 바로 옆의 스핑크스는 바로 이 석회암 기반암을 통째로 조각한 것이다.석회암은 주로 조개류나 유공충등의 사체가 바다 밑에 쌓여 생성된 암석이다.퇴적암이라 결이 있어 뜯어내기도 쉽다.비교적 부드럽고 무게도 가벼워 다루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인근에 위치한 채석장에서 가져온 이 돌은 피라미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부 적층용으로 사용되었다.강 건너편 채석장에서 가져온 하얀 고급 석회암은 표면을 연마해서 피라미드를 미려하게 장식(casing stone)하는데 사용되었다.왕의 현실 등 화려하게 장식하는 곳과 도굴꾼을 막기 위해 입구 봉인용으로는 단단한 화강암이 사용되었다.화강암은 지하 마그마가 굳어져 생성된 화성암이다.여러가지 광물들이 섞여 있어 색감은 화려하지만, 단단하고 비교적 무거워 다루기가 어려운 암석이다. 무게 25톤에서 80톤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로 약 8,000톤이 사용되었다.800km떨어진 아스완의 화강암 채석장에서 나일 강을 통해 운반해 왓다.이 화강암의 지질역사는 약 6억년전의 원생대에 생성된 것이다.또한 이런 석재들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모르타르도 80만 톤이나 사용되었다.

현대에도 다루기 어려운 무거운 석재는 어떻게 운반했을까?

이집트인들은 그 시대에도 바퀴라는 기술을 알고 이용해 왔다.그러나 그들은 바퀴 대신에
나무판 등을 이용하여 미끄럼 이동 방법을 택하였다.미끄럼 끌기 방법은 모래에 푹푹 빠지는 바퀴보다 훨씬 효과적이다.물을 뿌려 모래를 젖게하여 마찰력을 줄였다.그리고 완전 증명된 것은 아니나,경사로(ramp)를 이용해서 순차적으로 위로 쌓아 올렸다.강 건너편의 외관 장식용 고급 석회암과,아스완에서 채석한 화강암은 나일 강을 통해 날랐고, 이 공사 현장까지 이동시키기 위해 운하까지 있었다고 한다(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왜 황량한 사막위에 위대한 건축물을 세웠을까?

필요한 자재도 운반하기 어렵고 인력도 동원하기 쉽지 않고, 따가운 햇살이 어려운 노역을 더 힘들게 하였을 사막이었을까 하는 의문이다.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나일강은 매년 범람한다.나일강을 중심으로 인근 대략 10km정도가 그 영향을 받게 된다.기자 고원 지구는 이 위험 범위에서 벗어나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이다.현재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불과 수십km 떨어진 가까운 곳이다.그리고 그 공사에 필요한 석재들을 구할 수 있는 채석장이 있고 나일 강도 그 다지 멀지 않아 물류면에서도 유리한 곳이다.또한 고원 지대라 멀리서도 위대한 건축물인 피라미드는 쉽게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오늘 날 까지 거의 4,500년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것은 건축 기술도 있겠지만, 건조한 사막이 크게 한 몫 하였다. 주 구성재인 석회암은 습한 기후 환경에는 아주 취약하다. 또 사막 모래 폭풍은 이런 건축물을 뒤덮어 더 안전하게 오래오래 견딜 수 있게 보호막 역할을 하였다.

또 다른 불가사의,정교하다.

다루기 힘든 석재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축물이 믿지 못할 정돌로 정교하다.한변이 243m에 이르는 4개 밑변의 오차는 불과 58mm에 불과하다.피라미드 내부,왕의 현실(석관이 안치된 방) 천장에는  돌덩이들이 짓누르는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는데,그 압력을 어떻게 분산시킬 수 있었는지? 이 또한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어려운 과제인데 , 현실 지붕위에 독특하게 돌을 쌓아 올려 압력을 분산시켰다. 그 당시 수학 계산이 얼마나 정밀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피라미드는 정확하게 정사각형의 중심에 일치하는 꼭지점에 동일하게 사면이 연결되어있다. 기하학적인 면에서도 놀라운 것이지만, 다루기 힘든 석재로 매끈하게 오차없이 축조할 수 있었다는 것이 더욱 신기하다. 이것은 그 이전에 시도된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이루어진 기술의 발전에 힘 입었다. 근처 사카라(고왕국의 수도 멤피스)에 현존하는 계단식 피라미드(고왕국 제1왕조 BC3,100)가 증명하고 있다.최초에 사각형 지붕을 가진 지하 무덤(mastaba)에서 그 다움 무너지고 굽어지는 시행 착오를 거쳐 사각형 계단식 이후 정교하고 경이로운 건축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왕의 현실은 텅 빈 공간이다. 도굴이야 수 없이 이루어져  왔겠지만,그 흔적은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상식이다.위험을 무릅쓴 도굴은 인력동원이나 시간 제약 상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후기 술탄들이 주도한 공공연한 보물 탐사에서도 그 곳은 아무 것도 없는 그 저 텅 빈 공간이었을 뿐이다.왕의 현실 한쪽에 빈 석관만 남아 있었을 뿐이다. 술탄이 보물을 빼 돌리고 다른 이야기하지 않았나 하는 의문도 많았지만, 정황 상 사실일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론상  37,000개 이상의 방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부 어딘가 보물이 숨겨진 비밀의 공간이 있을 것이란 추정으로 아직도 첨단 장비를 활용하여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내부에 들어가도 별 것 없읍니다'하는 안내인의 멘트에도, 필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도굴꾼들이 이용한 입구를 통해 긴장한 채 쪼그려 자세로 몸을 낮추어 피라미드 내부를 탐험하였다. 오르막의 낮은 통로를 거쳐.대 화랑과 화강암으로 꾸며진 덩 그란 현실까지 들어갔다. 무엇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입구에서 휴대폰을 포함 모든 촬영기기는 맡겨 둬, 내부 촬영을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신비한 피라미드의 내부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피라미드는 어떤 용도였고 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피라미등의 어원은 통밀핫케이크라는 이집트어 pyamids가 고대 그리스어 pyramid가 되었다.정사면체의 바닥에서 경사면이 중앙의 한 꼭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입체형을 말한다. 이집트 이외에도 피라미드는 많이 존재한다. 이집트 기자의 대 피라미드의 사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르키고 있다. 동과서는 태양이 뜨고 지는 방향이다. 태양이 뜬다는 것은 탄생을 의미하고 서쪽으로 태양이 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세계를 굳게 믿었다.죽은 시체를 재탄생에 대비해 미이라로 처리하고 사후 세계 생활에 필요한 가구나,음식 등 모든 필요한 물품들을 함께 준비해 주었다. 남과북은 이집틍의 생명줄인 나일 강의 흐름과 평행하다.나일 강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강이다. 수직으로 꼭지점에 이르는 축은 땅과 하늘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축이다. 파라오는 절대권력의 왕이자 살아있는 신이다. 신의 사후 거처가 하늘 가까이 오르게 하는 의미다.피라미드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신비한 효과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을까?

종전에는 그 규모로 보아, 수십만의 노예가 20년에 걸쳐 동원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최근에 파피루스 기록물이 발견되어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숙련공을 포함하여, 많게는 수 만 명의 자유인이 급여를 받고.하루에 일정한 휴식시간을 가지며 이 노역을 했다는 것이다. 인근에 이들이 임시로 거주했던 주거지도 마련되었다. 병이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때에는 타인으로 교대도 가능했다고 하니 비교적 자유로운 노역 조건이라 할 수 있다.

피라미드는 현대판 뉴딜(new deal)정책의 거대한 일자리

고대 이집트의 계절은 3계로 구분된다.

나일강이 범람하는 범람기와 파종기와 수확기이다. 파종기와 수확기는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이고 일손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러나 범람기는 비교적 한가한 시기이다.거대한 피라미드는 파라오에게는 사후 영원한 안식처이자, 파라오의 권위를 나타내는 장엄하고 경외로움을 나타내는 건축물이다.이 거대한 건축 공사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현대에서의 뉴딜 정책과 유사하다.거대한 공사를 통해 농한기에 유휴 인력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먹을 거리를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거대 프로젝터였다.

제2화 고대 이집트 문명의 탄생

기자의 대 피라미드를 통해, 고대 이집트 문명의 수준을 짐작했을 것이다. 어떻게 5,000년 전에 높은 수준의 문명이 태어날  수 있었는지, 다양한 시각에서 그 베일을 벗겨 가 보자.

나일 강 없는 고대 이집트 문명은 상상할 수 없다.

실제 고대 이집트 여행을 한 것으로 알려진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헤로도토스(BC484~425)는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적절한 표현을 남겼다.


대 부분의 이집트 지역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이다. 고대 이집트 언어에 "비'라는 말이 없을 정도이다. 이집트를 남북으로 관통하며 흐르는 나일 강이 매년 범람하여 메마른 땅을 옥토로 바꾼다. 몬순의 영향으로 습한 인도양을 거쳐 온 무역풍이 중앙 아프리카, 탄자니아 등 동 아프리카와 에티오피아 고원 지대에 엄청난 비를 뿌린다. 우기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이 빗물은 백나일 ,청나일의 상류에서 이집트를 관통하면서 강 유역 양안에 넘쳐 영양분이 풍부한 검은 토양을 남긴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 땅을 '케메트(kemet)라 부르는 데 검은 땅이라는 의미다. 이 검은 땅은 비옥하여 농사에 적합하다.매년 이 현상이 반복되니 비료가 필요없는 천혜의 옥토인 셈이다. 자연스레 기원전 7,000년 경 훨씬 이전 부터 북으로는 시리아에서 남으로는 사하라 이남의 사람들이 나일 강 유역과 삼각주 지역으로 모여들었다.
농경 사회가 시작 된 것이다. 나일 강을 중심으로 약 20km가 농경 가능 지역이다.건기에도 나일 강에서 물을 끌어와 관개수를 이용하여 밀,보리 등 다양한 작물 재배를 할 수 있었다.,
비는 상류 지역에 내렸지만, 그 헤택은 이집트가 받고 있는 셈이다. 요즈음은  상류 지역 국가에서도 댐 건설 등 수 자원을 관리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삽입; 고대 이집트의 경작지와 인구의 증가 변화

   시기                             경작지sqare km)                  추정인구

BC4,000                            8,000                                350,000
BC3,000                           ~8,000                               870,000
BC2,500                            9,000                              1,600,000
BC1,800                            9,000  ⧾                          2,000,000
BC1,250                           10,000                              2,900,000
BC150                             16,000                              4,900,000

자료;THE COMPLETE CITIES OF ANCIENT EGYPT-Steven Snape
현재 남한의 경작지 면적은 대략 16,000km²


문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도시의 출현이 필연적이다. 도시는 농경사회 중에서도 잉여 생산이 넉넉한 곳이다. 잉여 생산물이 풍부하면 풍부할 수록 , 농경에 종사하는 직접적 인력외에 건축,예술 등 다양한 직업인이 생겨나게 되고, 유입이 늘어나게 된다.
농업 생산적인 문제 뿐 아니라 나일 강은 물류 운송의 고속도로로 먼 지역 까지 교역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나일 강을 따라 고대 도시들이 태어나고 ,이 도시들을 중심으로 고대 이집트 문명은 시작되었다. 먹을 것이 풍부하고 돈벌이가 쉬운 곳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하다. 높은 수준의 기술자, 예술가가 몰려들고 교역이 활발하여 당대 최고 수준의 문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특히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메소포타미아는 좀 더 일찌기 문명을 꽃을 피웠다.인류 기술의 요람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신 기술이 많이 나타난 곳이기도 하다.전체 인구의 약 20%가 장인이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그 당시 인구로 추정하면 약 10만명의 장인이 새로운 기술 탄생에 기여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그렇지만 산재한 도시국가들간의 패권 전쟁,방어에 어려운 툭트인 평야지대 등 방어에 어려운 약점이 있어 지속적인 발전이 어려웠다.
당대 최고의 명인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먹거리가 보장되는 이집트로 유입되었을 것이라 본다.이들이 차별화된 당대 최고의 이집트 문명 건설에 큰 부분을 담당하였을 것이다.

'파라오' 강력한 통치자 이자 살아 있는 신

'파라오(pharaohs)는 위대한 집이라는 의미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는 가장 강력한 통치자이자 신이다. 사후 세계관을 갖고 있는 고대 이집트에서 살아있는 신은 절대적이다. 농경사회에서 풍요한 수확은 그 권위를 뒷바침한다. 매년 범람하여 풍부한 먹을거리를 약속하는 나일 강이 파라오의 가장 믿음직한 후원자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파라오의 능력에 힘 입었다고 사람들이 믿는 한 그는 절대 권력자이자 신이었다.
사회의 조직망이 잘 정비되지 않은 고대 사회에서 강력한 통치력은 사회를 효과적으로 계통화할 수 있다.월력과 태양력을 병행하고 시리우스별의 위치등을  관측하는 천문기술을 활용하여 나일강의 범람시기를 예측하는 등,살아있는 신임을 믿게 하였다.  이 힘을 바탕으로
파라오는 장엄한 건축물이나 예술품을 더욱 장려하여 그의 권위와 위엄과 힘을 과시할 수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어느 시기에는 가뭄으로 기근이 들어 파라오의 능력이 의심받아 왕조의 힘이 약화되고 정치적인 혼란기를 빚은 시기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문제는 권력유지의 기반이다.

사막과 바다,늪지, 천연의 요새가 되다.

이집트의 남부는 거대한 사막이 가로 막고 있다. 그리고 북으로는 지중해,더 넓은 나일강 삼각주의 늪 지대가 부채살 처럼 퍼져 있다. 이웃한 메소포타미아는 앞선 기술 수준에도 평야지대라 외부의 침입을 막아 내기 어려웠다. 지금도 사하라 사막은 건너기가 쉽지 않다. 바다로 부터 침입 역시 나일강의 늪지대가 성벽보다, 더 효과적 방어책이다. 이런 천연의 요새가 고대 이집트를 보호하여, 지속적 문명 발전에 큰 몫을 하였다.

축복 받은 다양하고 풍부한 소재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기술과 소재가 필연적이다. 농업 잉여 생산이 많을 수록 ,기술이나 예술에 전념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내부 또는 외부 유입에 의해 늘어날 수 있다. 오늘 날에도 대량으로 소요되는 소재를 먼 지역에서 조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운반이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연유로 여행시에는 도로 포장재 등을 유심히 살펴본다. 대량의 수요가 필요한 소재를 통해 그 지역의 천연자원을 알아보고 그 지방의 지질환경을 알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집트는 위대한 문명발전을 위한 자원 측면에서도 축복받은 곳이다. 광활한 사막의 모래, 나일 강 유역의 진흙, 그리고 강변을 뒤 덮고 있는 갈대는 손 쉽게 만들 수 있는 흙벽돌의  소재다. 피라미드,사원 등 거대한 고대 이집트의 건축물은 대개가 석재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지만, 일반 거주지 등 대부분의 건축물은 주 소재는 흙벽돌이다. 모래,진흙, 갈대 등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적당한 크기로 틀에 찍어내어 따가운 햇볕에 자연 건조시켜 손쉽게 만들 수 있다.범람으로 침수되어 파손되드라도 역으로 손 쉽게 복원할 수 있기 때문에 진흙 벽돌이 가장 흔하게 사용되었다. 피라미드 등 대형 건축물의 소재인 석회암도 한 때 바다 밑 퇴적층이었던 관계로 아주 풍부하다. 원생대 기반의 화강암도 풍부하고 사암으로 이뤄진 언덕과 산도 많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런 자연의 선물을 잘 이용하여 위대한 문명을 이뤄 낼 수 있었다.만약 다루기가 비교적 용이한 석회암이나 사암이 이집트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거대한 피라미드나 사원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왕가의 계곡, 투탕카문  묘에서 발견된 화려한 보물들의 귀금속과 원석들도 이집트나 인근의 지역에서 교역으로 비교적 용이하게 구할 수 있었다.
예로서 터키석, 붉은 벽옥(Jasper), 초록 미사장석(amazonite)은 이집트 내에서, 라피스라즐리는 고대 교역로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입하였고, 구리는 인근의 시나이 반도에서 채광하거나, 지중해의 키프러스(cyprus) 등 지에서 구 할 수 있었다.
갈대의 일종인 파피루스도 그들의 기록문화를 오래 보존하여 후대에 까지 전할 수 있는 천연 소재다. 종이(paperr)의 어원도 이 파피루스(papyrus)에서 유래되었다.

상형문자(hieroglyphic) , 문자의 존재

문명이 체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후대에 소상히 전해 주기 위해 문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집트 문명은 거대한 건축물이나 대단한 보물을 통해 그 수준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5,000년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파라오들의 행적뿐 아니라 사회의 모습이나 관습등에 대해서도 잘 알려주고 있다. 1799년 나폴레온 군대에 의해 나일 강 삼각주 로제타의 진흙탕 속에 파 묻혀 있던 로제타석이 발견되었다.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한 일반언어와 그리스어 3개 문자로 기록된 석판이나 해독을 할 수 없었다. 상폴리옹이라는 천재의 끈질긴 노력에 의해  어려운 암호 같은 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되어 속속들이  그 비밀을 풀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 어느 문명보다도 더 자세하게 그 내역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히에로그리픽은 상형 문자이지만, 알파벳으로도 구성되어 기록이 용이한 편이다. 이 문자도 고대 이집 문명을 빛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건조한 기후 환경도 위대한 문명을 보존하는 데 일등공신

강철과 콘크리트로 표현되는 현대문명이 인간의 손길을 떠나 방치된다면 그 도시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 까?  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바 있다. 불과 100년이 지나더라도 나무와 식물로 뒤덮혀 참 모습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하물며, 5,00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거의 흔적이 사라질 것이라 보면된다. 그런데도 고대 이집트 문명은 아직도 굳건히 그 발자취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내구성이 좋은 석재를 그 주 소재로 사용한 것도 한 요인이나, 건조한 사막기후가 크게 일조하였다. 건조하면 풍화나 침식도 느리다. 그리고 늘 불고 있는 모래 바람이 그런 문명의 증거물을 적당히 덮어 잘 보존해 주었다.
위의 열거한 요소들을은 고대 이집트 문명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근거한다.그에 살을 붙혀 실제 필자가 이집트 여행 중 그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으로 재구성해 본 것이다. 대 피라미드에서 ,남쪽의 아부심벨 등 주요 유적지와 나일강 크로즈 항해를 계속하면서 지켜 본 자연 환경 관찰을 통해 보고, 느끼고, 유추한 결과에 기초한다.

제1화 문명의 탄생

인간사회의 발전을 수렵채집,농업혁명,산업혁명,그 이후로 나누고 있다.흔히 들 인간 스스로의 지각 발달에 의한 결과라 보지만, 더 크게 보면 자연 환경 변화에 따른 순응의 결과라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게 보인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빙하시대 털 매머드의 사냥은 혼자가 아닌 무리의 협동으로만 가능하다.자연스레 작은 부족 집단이란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 시기에 호모사피엔스는  전 지구 곳곳으로 줄기 세포처럼 퍼져 나갔다. 한 지역에서 대형 동물의 사냥은 늘어난 집단을 수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세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지역으로 확산해 갈 수 밖에 없다. 지금 현재는 각 대륙이나 섬들이 바다에 의해 분리되어 있으나,빙하시대에는 해수면이 지금 보다 많게는 120m나 낮았다. 대륙과 대륙,대륙과 섬들간에 연결 통로가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이동이 가능했다. 이후 빙하가 물러나고 온난화가 시작되자, 빙하기의 주 사냥감이었던 털 매머드가 사라져 가자, 인간은 새로운 형태의 생존 방법을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빙하기 집단 활동으로 사냥의 성공율이 높아지고, 그 덕분에 충분한 영양으로 인간의 두뇌는 더 발달하게 되었다. 자연 현상.생명현상을 잘 관찰한 결과로 ,채집 수렵보다는 씨를 뿌려  농작물을 수확하고, 동물을 길들여 가축을 기르는 방법을 터득하여 농경 목축 사회가 열리게 되었다.농경에 적합한 강 유역에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어 더 큰 촌락으로 발전해 가게 되었다.또 따듯하고 비옥한 지역에는 농업 생산성이 더욱 높아 잉여 생산이 가능하게 되어 도시가 형성되고 문명이 태어나게 되었다.
여기 대표적인 문명 탄생지역이 큰 강을 끼고 있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의 사이에 있는 초승달 지역인 메소포타미아, 나일강의 이집트,인다스강의 인다스 문명, 중국의 황하를 배경으로 하는 황하 문명이 그 것이다.

문명의 조건을 살펴보자

1.잉여 농산물과 도시화(civilization)

수렵 채집(hunting and gathering)활동에 의한 생존 방식은 개인 또는 소수 집단에 국한 될 수 밖에 없다.구성원 모두가 매달려야 생존이 가능하다.
빙하기가 끝날 무렵 ,비교적 온화한 큰강 유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농경 사회가 시작 되었다.농경 사회는 물을 이용하는 기술이 가장 중요한 만큼, 관개에 협업이 필요하다.
이 사회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통치와 정신적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종교,그리고 역할 분담이 필요한 계층구조가 태어 날 수 밖에 없다.이를 통해 점점 농경 생산성이 올라 잉여 농산물로 농경 이외에 종사하는 직업군이 태어 날 수 있었다.관료와 승려와 도구를 만드는 장인,장식과 예술에 종사하는 예술 장인,건축,의례와 각종 행사의 권위와 흥과 멋을 돋구는 춤꾼,노래 꾼 등의 다양한 직업으로 분화되었다.
즉 부족 형태의 촌락이 도시로 발전되어 문명 사회가 시작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2.고도의 기술과 풍부한 소재

사회가 분화되고, 단순한 생존 이외의 인간의 욕구가 점점 강해짐에 따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필요에 따라,소재를 찾아 내고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이 점진적으로 개발되어 고도의 문명으로 발전해 갈 수 있었다.뗀 석기에서 간 석기,금속을 찾아 내고 제련하는 방법을 발명하여 문명의 진전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류가 어려운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주변에서 쉽게 필요한 소재를 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사회에서 자생된 기술 장인도 중요하지만 와딴 문명 보다는 이웃한 타 문명이 있다면 
발전에 훨씬 유리하다.
자연스레 기술의 교류 또는 유입이 일어나게 되면 문명의 발전 속도와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4대강 고대 문명 중에서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나일 이집트 문명은 지리적으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육로와 바다를 통해서도 교류가 가능한 곳에 위치한다.
이런 연유로 특히 고대 이집트 문명이 그 당시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3. 사회 조직의 효과적 운영 및 통치,그리고 종교

인구 유입이 늘어 나고 사회가 비대해 지면 ,효과적인 운영 체계가 필연적이다.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중앙 집권적 계층 구조는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효율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농경 사회인 만큼,계절 변화,우기와 건기 등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왕은 이를 토대로 그의 신적인 권위를 유지할 수 있다.태양,별 등 천문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이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또한 정신적인 중심축이 될 수 있는 종교가 그의 통치 유지를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수렵 채집 시대의 샤만을 체계적으로 대체하는 종교는 통치에 절대적인 힘을 부여한다.사회 계층에서도 종교를 관장하는 승려는 왕 다음의 최상위에 자라잡고 있다.

4.발단된 문자와 기록 체

소수 집단의 씨족,부족 사회에서 도시화된 거대 사회로 변화는 다양하고 복잡한 각종 거래와
사회문제, 질서 유지를 위해 그리고 의사전달의 정확성과 효율성 등을 위해 기록할 수 있는 발달된 문자가 필요하다.문자 없이 복잡하게 일어나는 온 갖 사회 문제를 다룰 수 없다.
이는 사회 활동을 효율적으로 유지하는 것 뿐 아니라 ,지식의 축적과 전달에서도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5.문명의 지속 발전을 위한 영속성.지리적 환경과 사회환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어느 문명보다도 더 일찍 시작되었다.인류의 새로운 기술 개발의 요람이기도 하다.그렇지만 후발 이집트 문명이 더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우게 된 것은 방어에 유리한 지리적 환경(사막,늪,바다로 쌓여 외부의 침공이 어렵다)과 파라오를 정점으로 강력한 중앙 집권에 힘 입었다.상대적으로 메소포타미아는 툭 트인 평지로 방어에 취약하고,도시 국가 형태로 상호 세력 다툼으로 오랜 유지가 어려웠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전체 인구의 20%정도 대략 10만명에 이르는  장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메소포타미아가 무너지자 이들 장인들의 상당수가 이집트로 유입되어 당대 최고 수주의 문명을 이루는 데 기여하였다.

참고자료;Substance of civilization -Stephen Sass

 


광물과 함께 떠난 문명기행

'광물과 문명' 시리즈를 시작하며

필자는 거의 40여년 가까이 광물을 수집해 왔다. 그 수집품을 토대로 수장고 겸 광물 전시를 겸한 연구소를 현재 운영하고 있다. 광물 그 자체가 매력있는 자연의 예술품이자 자연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말 없는 이야기꾼이다. 인간의 역사도 좀 더 깊이 보면 광물과 함께 발전해왔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 인간이 어떤 소재를 이용했는지에 따라 문명의 발달을 구분하고 있다.필자는 그런 연유로 여행을 할 때도, 광물이라는 소재 관점에서 문명의 유산들과 그 지역의 자연 환경을 바라본다.

목적이 무엇이던, 여행은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특화된 목적여행도 있지만, 대개는 획일화된 프로그램에 따라 편하게 여행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유명 관광지에서 사진찍고, 그 흔적을 기록하는 그런 여행이다.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일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색이 바래는 여행이다. 필자도 좀 더 깊이 있게, 음미하는 여행을 갖지 못한 아쉬움을 느껴 본 경험이 많이 있다. 귀중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여행이 좀 더 깊숙이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지적 경험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얼까 하는 측면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맞닥뜨릴 그 대상에 대한 본질을 볼 수 있게 하는 기본적 지식이자 팁에 관한 이야기다. 유명 건축물, 고대 유물, 예술품, 자연경관에 대해서 그것을 이루고 있는 소재와 자연의 역사, 배경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시각과 깊이로 풀어가는 여행 이야기이다.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늘 맞닥드리는 각종 문명의 이기와 소재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본다.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겉으로 드러난 모습외에, 더 깊숙히 그 대상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고,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이게 바로 지적 즐거움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시리즈를 시작하게 되었다.

'여행 그 이상의 여행'을 위한 문명여행을 광물과 함께 떠나고자 한다.

season ₁  고대 이집트 문명을 찾아서

고대 이집트 문명은 세계4대 문명의 발상지로서, 현대에도 놀랄만한 문명의 수준을 뽑내고 있다. 국적을 막론하고 많은 고고학자, 소위 이집트학 학자(Egyptlogyst)덕분에 몇 천년을 거슬러 숨겨진 많은 의문들이 밝혀졌다. 이런 의문들에 대해 그 놀라운 문명의 퍼즐들을 풀어가면서 이 여행을 떠나 가본다. 필자는 몇년 전 어렵게 이집트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버켓리스트의 최상위였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실행치 못했던 여행이다. 몇년 동안 이집트 내부사정으로 정정과 치안상태가 불안정하고, 실제 국내에도 한 동안 시끄러웠던 납치 사건 등으로 여행길이 닫혀 있었다. 마침 아랍의 봄 등으로 인한 무정부적인 사회적 혼란이 수그려들면서 마침 내 여행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몇년전 국내에서도 국립 박물관에서 뉴욕의 '브룩클린 박물관 소장 이집트 유물전'이 열린 바 있다.


Brooklyn 박물관 소장 이집트 문명전(국립 중앙 박물관)

필자의 취미가 광물 수집이라 자연스레 소재 관점에서 관찰하였는데 그 다양성에 놀라움을 금 할 수 없었다. 다양한 소재를 이용하여 뛰어난 인류유산 걸작들을 태어나게 한 배경이나, 이집트의 자연환경은 어떨가하는 궁금증이다. 이후 여름 휴가차 잠시들린 부산의 한 호텔 북 카페에 펼쳐 놓은 큼직한 책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Egyptian Treasures from the Egyptian Museum in Cairo내 표지
Tutankhamun황금 옥좌에 그려진 투탕카문과 왕비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 소장품을 수록한 책이었다. 이를 계기로 이집트 관련 서적들을 구하고 탐독하였다. 어렴풋이 알 던 것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알면 알 수록 더 재미있는 사실들을 접하게 되어, 직접 눈으로 체험하는 시간여행을 떠나기로 하였다. 더 깊이 더 깊게 여행 욕심이 있었지만,  시간과 비용, 체력을 감안하여 차선의 여행을 다녀왔다. 그 여행을 일정 순으로 정리 나열한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본 이야기이다.

2016년 9월 9일 금요일

다이야몬드는  영원하다.


다이아몬드 공급 및 유통시장을 절대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드비어스 사의 마케팅 슬로간이다.세상의 모든 물질중 가장 단단한 물질이면서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영원한 사랑을 의미한다.다이아몬드는 희랍어로 정복되지 않는다는 뜻의 그리스 어원 adamas 에서 기원했는데 이는 가장 단단한 물질이라는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대적 경도를 기준으로talc을 1,석고2---- 루비,사파이어가9, 다이아몬드가10으로 가장 단단한 물질이다.절대적 경도 기준으로 보면 상대 경도 9인 루비에 비해 4배나 단단한 월등하게 단단함을 자랑한다.고대 문명에서도 다이아몬드는 알려져 있었지만,가공하기도 어렵고,루비나,에메랄드등 유색 보석에 비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사실 잘 가공되지 않은 원석 다이아몬드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1866년 남아프리카 kimberley 인근지역에서 Erasmus Jacobs라는 15세소년에 의해 21.7carat의 매우 반짝이는 돌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림1.마그마챔버에서 직접 지표로 연결되는 킴벌라이트 파이프
이 파이프가 다이아몬드 광상.3톤에서 1carat[0.2g]정도 산출


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지하 깊숙한 곳에서 맞딱드린 벽에 번쩍이는 다이아몬드에 놀라는 장면

이후 이 kimberley 에서 다이어몬드가 상업적으로 대량 채굴되어 보석중의 보석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20세기 초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브릴리언트 컷이라는 58면cut 세공 기술이 개발된 것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다이아몬드는 가장 단단하다는 특성외에 빛의 굴절률[2.42]이 아주 높기 때문에 컷트면이 많을 수록 오색 찬란한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다이아몬드의 품질 평가 기준으로 4C- 자연 요소인carat,clarity,colour,인공요소인cut-꼽는 이유다. 킴벌리 광산은 "the big hole"이라는 별명을 가진 다이아몬드를 가장 많이 생산한 광산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은 이웃 앙골라,자이레,탄자니아,남미의 가이아나,베네주엘라,러시아,오스트레일리아,보르네오, 최근에 중국의 후난성에서도 생산이 되고 있다.얼마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열연한"Blood Diamond"의 주 무대인 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등에서도 많은 양이 채굴되고 있다.특히 이들 지역은 정부와 반군들이 무기를 구입하는 큰 자금줄인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을 벌리고 또 이렇게 얻은 무기로서 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되는 대상이기도 하다.
현재 컷트 기준으로 200만 캐럿[0.2g]정도 공급이 되고 있다니 ,귀한 물질 기준으로 보면 상당한 양이 공급되는 셈인데 ,다이아몬드를 향한 인간의 소유욕구로 수요가 그 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필자의 돌아가신 어머니도  검소한 생활 습관이 몸에 베인 분 이었지만, 평생 소원중의 하나가 다이아몬드 가락지를 끼워보고 싶다는 것이었으니 ,이해가 되는 양이다.

다이아몬드는 어디에서 발견되나?

 다이아몬드는 순수한 탄소로 이뤄진 결정체다.동질 이상체인 흑연이 점토를 섞어 연필심으로 사용하는 부드러운 물질인 데 반해 세상에서 정복할 수 없는 단단한 물질이 되었는지 ?
그 생성의 비밀을 알아보자.고온,고압이 생성의 조건이다.현재 까지 알려진 학설로는 지하 150Km의 마그마 속에서 최소 온도 섭씨 1050도 이상의 고온에서 생성될 수 있다.
압력 기준으로 환산하면 52,777kg/cm2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연옥의 조건이다.지하 깊숙한  마그마의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것이라 상상하면 된다.이런 조건이니 지상에선 당연히 귀 할 수 밖에 없다.지하 깊숙한 마그마가 지상으로 분출될 수 있는 경우는 화산 폭발에 의한 경우가 있지만, 이런 조건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첫째[그림2의 1],마그마가 압력에 의해 급속히 지각의 틈새로 올라오는 파이프 형태의 초록색 빛을 띄는 킴벌라이트라는 암석에 점점히 섞인 형태로 발견된다
킴벌라이트 표본.민자연사 소장 .
8면체 다이아몬드 원석
.이런 파이프가 형성된 지역이 바로 다이아몬드 주 광상이다.둘째[그림2의2],해양지각판이 대륙 지각판 밑으로 미끌어져 들어가는 섭입이 일어나는 곳[높은 온도와 압력이 발생]에서 생길 수 있다.세째[그림2의3],소행성이 지상에 충돌할 때  충돌압력과 고온이 발생하여 다이아몬드가 생성될 수 있다.실제 미국 아리조나주에 있는 가장 보존이 잘되어 있는 운석 충돌 분화구인 베린저[Barringer Crater;종전 Canyon Diablo] 는분화구 주변에서 이를 실증하는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다.
베린져 운석 분화구.50,000년전낙하충돌.직경1.2km깊이170m
네째[그림2의4],지상에 떨어진 운석내 소량이지만 다이아 몬드가 포함되어 있다.대개의 운석은 태양계와 지구가 형성될 때 생긴 것인 만큼,지구 이전에 우주에 이미 존재했던 물질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canyon Diabblo운석 파편.다이아몬드가 미량 포함.민자연사 표본



그림2.다이아몬드가 생성되는 조건들

우주에는 다이아몬드가 널려있다?

몇년전 미우주항공국 NASA에서 다이아몬드행성이 발견했다고 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바 있다.우주 광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주 최초의 광물이 바로 다이아몬드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수소원자들이 뭉쳐 수소핵융합의 불을 붙혀 별이 태어나고 ,최종적으로 소멸해가는 과정에서 태양보다 큰별이나,연성의 경우 초신성 폭발[슈퍼노바]로 별의 일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초고압과 온도 조건에서 현재의 모든 자연계 원소들이 생겨났다.이 초신성 폭발 이후 탄소 농도가 높은 우주의 어느 한 곳에서 온도가 냉각됨에 따라 미세한 다이아몬드가 형성되어 옅은 안개처럼 존재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별의 일생 과정에서 우리 태양도 현재 코아의 수소를 핵융합하는 젊은 별[주 계열성별]이지만, 앞으로 50억년이 지나면 ,코아의 수소는 고갈되어 외부에 존재하는 수소핵융합 반응으로 적색 거성으로 바뀌게 된다. 이때 현재 지구도 적색거성이 된 태양속으로 삼켜지게 된다.이후 수소핵융합의 결과물인 헬륨을 순식간에 태워[hellium flash] 최종적으로는 탄소 덩어리인[산소도 포함] 백색왜성으로 변하게 된다. 이 백색왜성이 아마도 다이아몬드로 이뤄졌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별의 크기에 따라, 별의 마지막은 블랙홀,중성자별,백색왜성으로 된다고 하니,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수천억개의 별중에 많은별들이 백색왜성으으로 될 가능성이 높으니 우주에는 다이아몬드가 널려있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현재 비교적 가까운 시리우스B,프로키온B가 백색 왜성이다.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우주의 장엄한 역사에 비해 찰나중의 찰나에 지나지 않으니 거저 그렇수 있다는 것이지, 현실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있다.가장 가까운 별중의 하나인 시리우스만 해도 몇 광년[빛의 속도로 1년 걸리는 거리;약 10조km]이 걸리니 현재 인간의 기술로는 도달할 수 없는 거리다.그러니,다이아몬드가 우주에 아무리 널려 있다고해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서는 귀하고 귀한 물질일 수 밖에 없다.


참고문헌; 지구이야기[로버트헤이즌],위키피디아,7000years of jewellery.

2015년 11월 18일 수요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 ; 반 나절의 운중천 자연 관찰

그 동안   광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기초 지식과  특별한 광물에 얽힌 이야기를 실어 왔다.
그러나 우리 일상에서 이런 광물들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필자 역시 이곳 서판교로 최근 이사온 후 운중천을 일과처럼 1시간 가량 운동 삼아 걷고 있지만, 주변에 어떤 것이 숨어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10월 햇빛 좋은 날, 3살 배기 손녀- 루비-와 함께 걸을 기회가 있어 ,

루비의 아장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다보니, 천변의 바위에 제법 또렷한 광물 결정이 눈에 들어 와서 ,가까이서 깊이 관찰하니 검은 운모 결정이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이를 계기로 시간 여유를 갖고  ,주변에는 어떤 것들이 숨어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기로 했다.


운중천을 따라 숨겨진 보물들


새 동네 서 판교 중심을 흘러 내리는 운중천은 생태계가 잘 유지된  곳이다.





고즈넉한 곳은 아니지만, 번잡하지 않고 혼자서 가볍게 산책하면서 사색하기에 적당한 도심 속의 생태 공원이다.천 주변에는 개성있는 카페들이 늘어서 있어 ,커피 한잔 생각나면 가볍게 들려 느긋함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운중천 카페에서 잠깐 휴식
그러나 일상의 규칙적인 운동 삼아 걷기는  빠른 속도 때문인지, 그냥 "편안한 곳"이구나 하는 느낌 외에는 특별 함을 보지 못했다.그러나 루비와 함께 아기 걸음으로 걷다 보니 종전에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것 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루비에게는  역시 보이는 게 많았다.개미,잠자리,나비 등등 신기함에 멈춰서서 자리를 뜨지 않으니 함께 천천히 살펴 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천변 방축으로 쌓인 바위 더미에서 광물 수집가인 나의 눈도 비껴 나간 것들이 새삼스레 나타나기 시작했다.
편마암

흑운모 결정

흑운모 결정
운중천은   편마암[schist] 바위들로 쌓여 있는 데, 왠만해서는 광물 결정을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간혹 이렇게 육안으로 쉽게 관찰되는 꽤 큰 결정들이 보였다.
이 정도 큰 결정은 본인의 흑운모 수집품 중에 체코에서 수집된 표본보다 더 큰 결정들이다.

이제 더 관심을 갖고 바위들을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천천히 걸었다.역시 편마암 바위속에 붉은 페인트를 칠 한 것 처럼 보이는 것이 눈에 들어와서 자세히 보았더니, 아! 이거 세립질[
아주 조그만 결정] 석류석이 아닌가[ 성분 분석은 안해 보았지만 경험에 의해]?

석류석 작은 결정들이 군집

잘 익은 석류알 같은 석류석

 점점 주변의 바위들은 이제 하나 하나가 예사로운 대상이 아니다.또 주변의 바위와 달리 녹색의 줄 무늬가 길게 늘어선 바위가 나타났다.
바위 전체가 옅은 초록으로 장식된 것
아마 이 옅은 녹색 빛 광물은 천하석[amazonite]으로 보이는 데 장석의 한 종류다.
색갈이 짙은 천하석은 준 보석으로도 많이 사랑 받고 있다.
천하석[amazonite 결정.]브라질.필자소장
청동기 시대 장신구에도 사용되는 곡옥이라는 보석이다.
왕관이나 장식품에 사용된 곡옥

그 뿐인가  계곡으로 폭포가 힘차게 쏟아져 내리는 바위도 보였다
흰 장석 결정들이 군집해서 폭포를 이루었다.

바위는 광물들의 군집체이다.군집체 이기 때문에 큰 결정을 가진 심성암이 아닌 경우, 개별의 광물은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그런나 위에서 본 바위들 처럼 특이하게 특정의 광물이 군집해서 문양을 이룬 경우 우리는 형상석이나 수석이라 해서 관상용 돌이 되기도 한다.


나비와 곤충들은 어디로 갔나?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호랑 나비.배추 나비.제비 나비등 ,다양한 종류의 나비 들을 볼 수 있었지만,근래 들어서는 나비 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바위들 뿐 아니라 운중천을 따라 늘어선 식생들에 눈길을 주면서 관찰하자 ,정말 보기 어려운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 했다.필자 역시 아직 식물이나 곤충들의 정확한 학명은 알 수 없어 사진으로 그 모습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화분을 즐기는 나비 사촌?


검은 스텔스 같은, 날개의 형상이 특이한 나비 같은 것이 화분을 즐기는 모습도 잡혔고


옛 날 봤던 큰 호랑 나비는 아니지만,


배추 흰나비

이 녀석들은  내가 카메라를  좀 더 가까이 들이 댔지만, 화분을 빠는 삼매경에 흠뻑 젖어
있었다.덕택에 더듬이는 물론 화분을 빨아들이는 디테일 까지 볼 수 있었다.

또 한 녀석은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어린 루비가 찾아 낸 무당 벌레다.
점박이 무늬가 정말 앙증 맞은 녀석이었다.그래서 애기 눈에 잘 띄였나 보다.

천변을 따라 늘어선 코스모스는 정말 아름답다.코스모스 꽃잎은 몇개 일까? 호기심이 작동해서 세워 보니 8개다.대개의 꽃잎은 짝수인가? 대개는 8개 꽃잎 이지만 예외도 있었다.6개,7개 짜리도 있었다.꽃잎이 떨어 져서, 아니면 돌연 변이 일까?





꽃들도 다양했다.특이하고 색갈이 선명한 보기 쉽지 않은 꽃들도 숨어 있었다.
이 뿐 아니라 마지막 가을을 앞두고, 먼 여행 준비를 끝낸 민들레 홀씨 같은 것들도 여기 저기 보였다. 바람 타고 여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태이다.이 처럼 비행하기 좋은 설계는 누가 했을까?


이 녀석은 비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한폭의 그림들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다.붉은 단풍만 예쁜 것이 아니라 ,화살 나무 단풍이 그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새로이 알았다.내년 봄 쯤에는 집앞에도 울타리 삼아 화살 나무를 심어 볼 까?
화살 나무 옆에 포도 처럼 주렁 주렁 매달린 열매가 풍요로움을 더 하는 그리스 신화의 풍경화  같기도 했다.


운중천을 지나 판교원로변에 있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은행 나무의 단풍은 샛 노랑 색 때문에 아름답다.그런 데  어린 나무의 
단풍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판교 원로 산책길은 얕은 산을 병풍 삼아 길게 늘어선 멋진 산책길이었다.조깅을 해도 좋고 
벤치에 앉아 산을 마주하고 책 읽기에도 좋은 길이었다.
길을 따라 한참 걷다 보니 굴 다리 안에 , 그림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했다.그림 타일이었다.그냥의 그림 타일이 아니라 마티즈,미로,클레등 대가들의 작품들이다.






판교원로 굴다리
반 나절의 자연 관찰로,바위와,꽃,곤충,광물,미술품,단풍 그리고 적절한 걷기와 힐링
이런 아름다운 것들이 "멈춰야 비로소 보인다"는 혜민 스님의 말로서 새삼스레 닦아 왔다.

끝으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더 붙이고 싶다.자연을 더 즐기고 싶으면 자연에 대해 더 배워라!